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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뛰게 하는 한권의 책(김수철전4)
2019년 11월 15일 09시 29분  조회:4940  추천:1  작성자: 오기활
                 추천사
 
                                          가슴을 뛰게 하는 한권의 책(김수철전4)
                                
                                                                      신봉철
 

  지난해 하반년, 유명기자이며 오랜 벗인 오기활선생이 나에게 연변농학원의 93세의 고령인 김수철 교수의 인생스토리를 얘기해주었다. 당시 비록 구두로 한 얘기였지만 아래의 세가지 점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첫째, 김교수는 ‘21세기의 리시진’이라는 것이다. 

둘째, 93세의 고령임에도 안경을 모르고 산천을 누비며 식물채집을 한다는 것이다. 

셋째, 김교수를 ‘길림성감동인물’, 나아가서는 ‘중국감동인물’로 추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날 오선생은 상론조로 이미 김교수의 자서전(전기)을 썼는데 나에게 추천서를 써줄 것을 청탁하였다. 

이에 내가 “김교수는 중량급 인물인데 내가 추천서를 쓰는 것이 타당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니 오선생은 “연변농학원이 당년에 룡정시에 자리했고 당신이 룡정시당위서기를 담임하였기에 비교적 상황에 익숙하니 쓰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였다. 

하여 나는 다른 토를 달지 않고 승낙하였다.

얼마후에 오기자는 두툼한 원고를 나의 이메일로 보내왔다. 나는 지대한 흥취를 가지고 진지하게 김교수의 사적을 열독하였는데 읽을수록 맘속의 감동을 금할 수 없었고 김교수의 인생경력, 탁월한 성과, 드넓은 흉금, 고상한 정조, 지칠 줄 모르는 탐구정신에 탄복되여 오래도록 펜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오기자의 ‘지청구’에 어쩔 수 없이 93세의 고령인 당대 ‘리시진’에 ‘평어’를 쓰기로 하였다.

빛나는 인생

김수철, 1925년 4월 1일, 룡정시 태양향 횡도촌 향양툰의 농민가정에서 출생하였다. 7살 때부터 당지의 한문서당에서 계몽교육을 받았다. 10살 때에는 양흥사숙(阳兴私塾)에서 교육을 받았고 11살 때에는 중흥사숙(中兴私塾)에 전학하였다. 

천성이 총명한 김수철은 소학교 3학년 때 일어로 된 고전명작 ¡ì서유기¡í를 읽을 수 있었고 미술을 배우면서 야외스케치를 할 수 있었다. 17살—18살  때(1942년—1943년), 연길국민고등학교 1년급—2년급에서 공부하고 3년급—4년급은 왕청국민고등학교에서 축목수의와 일어, 영어를 배웠다.

해방초기에는 가정성분이 부농으로 획분되였다가 2년후에 ‘규편중농(纠ø¶ñé农)’으로 규정되였다. 김수철은 이 성분‘딱지’로 하여 고통스러운 정신생활을 하게 되였다. 

1944년에 왕청국민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도문시친화목재주식회사 역축보건지도원으로 배치받고 선후로 팔가자출장소, 고동하벌목장, 로령벌목장에 출근하다가 심한 전염병에 걸려 정신상, 육체상의 고통으로 하여 자살까지 시도했다.

1946년 1월부터 김수철은 1년 동안, 룡정시 태양구중심소학교에서 무보수로 교직으로 지내다가 1947년에 시험을 거쳐 룡정의과대학에 합격되였지만 ‘규편중농’ 때문에 ‘정치심사’에서 락방되고 참군도 불허되였다. 

그로부터 4년 동안 농업생산로동에 종사하면서 촌의 민주대동맹활동에 참가한 김수철은 유일한 청년위원으로 선거되여 활약하면서 다방면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50년대초에 연변농학원의 생물실험실의 실험원으로 배치를 받은 김수철은 1950년—1958년 기간에 여름방학과 공휴일을 리용하여 연변 각지와 장백산구를 답사하면서 3,000여종의 식물표본을 채집하였다. 그 후 연변농학원에서 조교로 교직에 있으면서 1959년—1965년 사이에 여름방학을 리용하여 동북3성을 누비면서 25,000점의 식물표본을 채집하였다.

‘10년내란’ 때에는 백전(白专)로선을 걸었다는 ‘죄명’으로 비판투쟁을 받고도 동북3성과 내몽골, 산서, 해남도의 50여개 산봉우리를 돌면서 2,500여종의 식물표본을 채집하였다. 

김수철은 연변농학원 강사, 부교수, 교수로 있었고 1987년에 정년퇴직을 하였다. 김수철은 퇴직후 30년 동안, 시종 식물 채집과 연구를 견지하면서 17권의 전문저서와 론문(조선어, 한어, 일어, 영어)을 출판하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퇴직후 원시자료, 회화, 사진 및 동영상으로 3,200여종의 식물삽도를 제작하고 조선어, 한어, 영어, 라틴어로 몇천가지 식물의 학명, 별명, 산지, 약효 등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명실공히 당대의 ‘리시진’으로, 동아급(东亚级) 식물학자로 부상되였다.

연변조선족자치주우수당원, 길림성로력모범, 길림성 중약자원보충조사 선진사업일군으로 된 김수철은 1990년에 국가농업부로부터 ‘전국초원자원조사우수상’을 받았다.

김수철은 선후하여 연변생물학회 명예회장, 길림성초원학회 고문, 대한민국식물자연학회 고문, 연변알로에연구소 소장직을 지냈다.

김수철옹의 포인트

김수철은 중국뿐만 아닌 아시아 식물학령역에서 널리 전해지고 칭송되는 식물학계의 거인이다. 

그렇다면 그의 신상에서 어떤 보귀한 정신적 재부가 체현되였는가? 

첫째, 탐구정신

400년전에 리시진은 30년을 거쳐 1,892종의 식물로 ¡ì본초강목¡í을 집필하였다. (후에 374종의 새 품종을 첨가함.) 그러나 400년후 김수철은 60여년(퇴직후 30년)이나 산을 넘고 재를 넘으며 2만 5천점의 식물표본을 소장한 생물실험실을 건립하였다. 90고령엔 ¡ì길림성식물채색도감¡í을 출판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이나 로친을 딸집에 보내고 혼자서 산골초가집에서 자취하면서 산과 재를 넘나들었으니 그의 탐구정신은 ‘산신(山神)’임에 틀림없다.

둘째, 평생학습정신

김수철 교수는 여섯개 나라의 언어를 장악했다. 한어, 조선어, 일어,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하고 론문을 쓰며 식물표본에 주석을 달고 문학작품까지 열독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결과는 그의 말씀 대로 산을 다니며 식물표본을 채집하는 배움의 길을 통해 이룬 것이다.
그리고 식물표본을 그리기 위해 50~60세에 스승을 모시고 회화, 촬영을 배워 전업수준에 이르렀다. 그가 만년에 컴퓨터를 세번이나 바꿨다니 그의 평생학습정신을 알 수 있다.

셋째, 유머와 락관정신

김수철 교수는 평소에는 말수가 적지만 대화를 시작하면 유머감이 넘친다. 

94세의 고령임에도 몸건강이 50대로서 책이나 신문을 볼 때에 안경을 쓰지 않는다. 건강비결을 물으면 “일생동안 길섶의 풀과 산속의 식물을 먹었기에 오늘까지 건강하게 살며 병원이 어딘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는 “큰병은 뜸이다.”라고 하며 ‘뜸’으로 여러가지 잡병은 물론 가족들의 암까지 치료하였다. 

넷째, 사심 없는 겸허함

김교수의 업적과 공헌에 비기면 그가 받은 영예는 새발의 피라 할가. 내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구동성으로 “김교수는 머리 숙여 일만 하는 늙은 황소이다.”라고 답했다. 

그는 매체의 취재에 별로 나서지 않기에 매체들이 그에게 접근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다행히도 오기활기자가 김교수의 제자로서 이 책을 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는데 결국 김교수의 동료들의 도움으로 끝내 승낙을 받게 되였다. 

이런 겸손과 부드러움은 오직 마음속에 사업밖에 없고 명리를 탐내지 않는 인테리의 이미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다섯째, 대의를 위한 봉사정신

김교수는 일생동안 한눈 팔지 않고 신념, 의지, 탐구, 분투로 대업을 이룩하고 대의를 실현하였다. 중국꿈과 민족꿈을 실현하기 위한 한길에서 우리에게는 이러한 대의를 도모하는 정신, 의연한 분투, 고집스러운 탐구, 각고의 노력, 불후의 업적이 소요된다.

필자는 이 책이 김수철옹에 대한 가장 권위적인 ‘평가서’로서 모든 분발하는 사람들에게는 ‘격려’와 ‘거울’로, 그리고 ‘모듈의 책(模块书)’으로 되며 중국꿈을 실현하는 ‘안내서’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믿으면서 독자들에게 얻기 힘든 김수철옹의 대작을 추천하는 바이다.
 
¦ 부언
책의 저자에 관하여
 
오기활씨는 신문계에서 쟁쟁하게 이름이 나있다. 
이하는 몇십년 동안 익숙하게 지내온 오기활씨에 대한 나의 소견이다.
첫째, 풍부한 경력을 갖고 있다. 
비록 농학원을 졸업했지만 자기의 능력을 잘 알고 한평생 신문사업에 종사하면서 자아를 실현하였다. 
둘째, 많은 작품을 출산하였다.
몇십년래 무수한 신문원고를 발표했는데 그중에는 적지 않은 경전적인 가작들이 있다.
셋째, ‘과감히’ 쓴다.
특히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직언직설(òÁåëòÁ说)하며 백성들을 위하여 목소리를 높인다.
넷째, 유쾌한 사람이다. 

70대에도 술상에서 반근 술은 거뜬히 하는데 그 이미지가 마치 어느 위인과 근사하다. 
다섯째, 의리를 중히 여긴다.

사람됨이 의롭고 감히 성을 내고 울고 웃으며 감히 의협심이 강한 말을 쏟아낸다. 이렇게 투명한 사람이 김수철이란 호인(好人), 기인(奇人), 대인(大人)을 좋은 책으로 펴냈으니 저자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를 진심으로 축복하며 부언한다!
 
                       

신봉철
(원 길림성 인력자원 및 사회보장청 부청장, 현임 중국 ‘단군문학상’리사회 회장)
2019년 1월 21일 해남도 금전심성(金典心城)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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